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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 독후감,기억과 증언,광주민주화운동

by 올라운더 LEE 2025. 5. 5.

 

소년이 온다 책표지
소년이 온다

 

한강 소설 소년이 온다 독후감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읽는 내내 가슴 깊은 곳을 후벼 파는 고통의 문장이었다. 이 작품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벌어진 국가 폭력의 참혹한 현장을, 그 중심에 있었던 한 소년과 주변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다각도로 서술하며 인간의 존엄성과 기억의 의미를 묻는다.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서,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문학으로 기억하는 ‘증언’에 가깝다.

작품은 열다섯 살 소년 ‘동호’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뒤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돕는다. 소설의 첫 장면부터 독자는 피와 부패, 총성과 참혹함이 넘실대는 도청 안 시신 임시 안치소로 끌려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이 소설은 끝날 때까지 그 어둠과 마주하도록 만든다. 죽은 사람들을 정리하는 소년의 손, 부패해가는 시체의 무게, 어머니를 찾는 어린아이의 울음이 한 문장 한 문장, 독자에게 도달한다. 피냄새가 묻어날 것 같은 한강의 묘사는 문학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인간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한강은 독자가 외면하지 못하도록, 문장으로 현실을 재현한다.

동호의 죽음 이후, 소설은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도청에 함께 있었던 여성 운동가, 그 시절을 잊고 살아가려던 전직 교사, 동호의 어머니, 그리고 고문 후유증으로 삶이 파괴된 한 남성 등 각기 다른 생애를 살아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차례로 등장한다. 각 장마다 인물의 시점은 1인칭 또는 2인칭, 때로는 내면의 흐름에 가까운 독백 형식으로 변주되며, 광주의 기억을 공유한 이들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고 무너졌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역사적 재현을 넘어선다. 작가는 이들 각각의 인물 속에 깃든 트라우마와 고통, 그리고 망각과 기억의 싸움을 통해 ‘진실을 말하는 일’의 무게와 책임을 묻는다.

기억과 증언


이 작품의 핵심 주제 중 하나는 ‘기억과 증언’이다. 국가에 의해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되는 가운데, 이 책의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통을 기억하거나 잊고 살아간다. 어떤 인물은 잊지 않으려 밤마다 자살 충동과 싸우고, 또 어떤 인물은 모든 것을 지운 채 고요한 일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한강은 그 모든 시도 앞에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누구이며, 무엇을 지키고 살아가는가?” 소년이 온다는 기억을 되살리는 행위 자체가 곧 저항이고, 증언이라는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작가가 ‘죽은 자’의 시선을 빌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장면이다. 동호는 죽은 이후에도 화자로 등장하며, 살아남은 자들을 바라본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마치 망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들며, 단순히 현실의 고통을 넘어선 ‘윤리적 책임’의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이제 인간이 아니지만, 나를 기억하는 너는 인간이어야 해.” 라는 메시지가 소설 전반을 감싸고 있는 것이다.

작품 전체에서 반복되는 감정은 고통, 죄책감, 슬픔, 무력감이다. 이는 광주의 진실이 단지 물리적 폭력에 의한 학살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살아남은 자들이 짊어진 죄책감과 상처는 오히려 죽음보다 더 지속적이고, 더 깊은 고통으로 작용한다. 특히 ‘정신병원’에 갇힌 한 인물의 서술은 그 상처가 삶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고문으로 인해 말과 몸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되었고, 사회로부터 격리되었으며,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해간다. 이는 물리적 학살 이상의, 정신적 폭력과 사회적 배제가 어떻게 한 사람을 죽이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러나 이 소설이 단지 절망과 고통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소년이 온다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단어를 진창 속에서도 지키려는 노력의 기록이다. 죽은 자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 누군가의 시신을 정성껏 닦아주는 손길, 아직도 도청 안의 숨결을 기억하는 사람들. 이들은 모두 ‘잊지 않는 사람들’이며, 그 존재만으로도 인간성과 연대의 가치를 증명한다. 한강은 말한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이며, 그 본질은 서로를 기억하고 연결하려는 데 있다고. 이는 단순한 문학적 감상이 아니라, 작가가 독자에게 요구하는 도덕적 책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너는 인간이어야 해. 너는 말할 수 있어야 해.” 이 문장은 단순한 문학적 장치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는 윤리적 요청이다. 과거를 기억하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침묵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인간의 조건이며, 문학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광주민주화운동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역사적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가. 단지 과거의 비극인가? 아니면 여전히 끝나지 않은, 현재형의 이야기인가? 소년이 온다는 후자를 말하고 있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으며, 잊지 않으려는 자들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진실을 기억하고 말하는 자, 아픔을 끌어안고 견디는 자, 죽은 자의 이름을 대신 불러주는 자들이 있어야만 인간은 인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에필로그 형태로 마무리된다. 시간은 흘렀고, 동호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는 살아있는 이들에게 말을 걸고 있다. 자신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하고 목소리를 대신 내주기를 바란다. 그 순간, 소설을 읽는 우리는 더 이상 단순한 독자가 아니다. 동호가 남긴 목소리의 청자가 되고, 이제는 그 목소리를 세상에 전해야 할 증언자가 된다. 이 지점에서 소년이 온다는 문학을 넘어선다. 이는 한 권의 책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이자 살아있는 생명의 이야기다.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쉽게 부서질 수 있는 존재인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 부서진 존재가 얼마나 강인할 수 있는지도 증명해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문학의 본질적 기능—진실을 말하고, 고통을 기억하며,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는 것—을 실현해냈다. 소년이 온다는 우리 시대 가장 치열하고, 고통스럽고, 아름다운 증언이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책임을 자각하는 일이다. 그리고 나는 이 책임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