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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인간의 인지 편향,개인적인 소회

by 올라운더 LEE 2025. 5. 16.

데이비드 핸드의 소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우연 속에서 질서를 보다


우리는 일상에서 무수한 우연을 경험한다. 가령, 길을 가다 오랜만에 초등학교 동창을 마주치거나, 처음 구입한 복권이 당첨되거나, 누군가와의 만남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험은 대부분 운명이라거나 기적, 혹은 단순한 행운으로 치부되지만, 데이비드 핸드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를 통해 그런 사건들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며, 왜 일어나는지를 통계학적으로 설명해낸다.

이 책은 통계학자이자 과학자로서의 핸드가 인간 삶 속 우연의 본질을 해명하려는 시도이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우연’이라 부르는 많은 사건들이 사실은 통계적으로 매우 높은 확률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겉보기엔 기적처럼 보이는 사건도, 충분히 큰 표본이나 시간 속에서라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희박한 사건의 법칙’(The Law of Inevitability of Rare Events)이라고 부른다.

이 독후감에서는 책의 중심 내용을 요약하고, 이 책이 주는 통찰이 우리의 삶과 사고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세 가지 큰 주제를 중심으로 풀어보고자 한다.

우연은 정말 우연인가? – ‘희박한 사건의 법칙’

책의 제목인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을 빌린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이 제시한 불확실성과 확률 중심의 세계관에 대해 반감을 드러내며 이런 말을 남겼다. 그러나 데이비드 핸드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그는 “신은 확률에 따라 정교하게 주사위를 굴린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겉으로 보기엔 ‘무작위’처럼 보이는 사건들도 사실은 통계적으로 예측 가능한 범주 안에 있다는 것이다.

핸드는 ‘희박한 사건의 법칙’이라는 개념을 중심에 놓는다. 이 법칙은 희박한 확률로 발생하는 사건이 엄청나게 많은 기회 속에서 반복되다 보면, 그 중 어느 순간엔 반드시 발생하게 된다는 원리를 설명한다. 가령, 복권 1등 당첨 확률이 1/800만이라고 해도 매주 수백만 명이 복권을 산다면, 누군가는 당첨될 수밖에 없다. 통계적으로는 그것이 놀라운 일이 아닌 것이다.

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실례를 통해 이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예를 들어, 한 여성이 네 명의 자식을 모두 유산한 경우, 이는 경찰과 언론에게는 매우 의심스러운 사건으로 여겨졌지만, 핸드는 그것이 충분히 가능한 확률의 범주에 있다고 말한다. 세상에는 수십억 명이 존재하고, 매일 엄청난 수의 사건들이 일어나기에, 이런 ‘희귀해 보이는 사건’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우리의 세상 보는 방식을 뒤흔든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우연, 기적, 행운, 불운 등은 단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구조를 가질 수 있다는 통찰은 매우 흥미롭고도 중요하다.

인간의 인지 편향

확률을 오해하는 심리학

우리가 우연한 사건을 ‘놀랍다’고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핸드는 그 핵심이 인간의 인지 편향에 있다고 본다. 인간은 확률에 기반한 합리적 사고보다, 감정과 직관에 더 많이 의존한다. 그래서 복권에 당첨된 사람은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수백만 명의 탈락자는 잊어버린다. 우리는 흔히 자신에게 일어난 희귀한 사건을 과도하게 의미화한다.

저자는 다양한 인지 편향의 사례를 소개하며, 왜 사람들이 확률을 잘못 이해하고, 우연을 과대평가하는지를 설명한다. 대표적으로 ‘대표성 휴리스틱’(representativeness heuristic)이 있다. 사람들은 특정 사건이 얼마나 통계적으로 대표적인지를 기준으로 확률을 추정한다. 가령, 동전 던지기를 다섯 번 했을 때 모두 앞면이 나오는 것이 실제로는 다른 조합들과 동일한 확률을 갖고 있음에도, 우리는 그것이 ‘이상하다’고 느낀다.

이 외에도 ‘도박사의 오류’(gambler’s fallacy), ‘후광 효과’, ‘생존자 편향’ 등 여러 가지 심리적 오류들이 우리가 세상을 얼마나 비합리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지를 소개한다. 특히 도박사의 오류는 사람들이 과거 사건이 미래의 확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착각하는 전형적인 사례로, 우리가 얼마나 확률 개념을 직관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보여준다.

핸드는 이 모든 편향이 우리 삶에 깊이 침투해 있으며, 사회적 판단, 금융 결정, 인간 관계, 건강 관련 선택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잘못된 판단을 유발한다고 경고한다. 그는 이러한 편향을 줄이기 위해 통계적 문해력(statistical literacy)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리가 좀 더 냉철하게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확률과 운명 – 통계는 삶을 어떻게 바꾸는가?

책의 마지막에서는 우리가 통계적 사고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한다. 핸드는 통계학이 단지 숫자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 불확실한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며, 그것이 인간의 삶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우연은 우리의 삶에 결코 우연히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삶 속의 사건들이 모두 통제 가능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이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다. 불운한 사건도 결국에는 어떤 확률의 결과일 수 있고, 행운도 거기에 속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통찰력 있게 상황을 판단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또한, 통계는 미래를 예측하고 위험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의료계에서의 임상 실험, 금융 시장에서의 리스크 관리, 보험 산업의 가격 책정, 재난 예측과 대응 등에서 확률적 분석은 이미 핵심적인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확률과 통계는 현대 사회의 구조를 형성하는 필수적인 언어이며, 이에 대한 이해는 곧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힘이 된다.

핸드는 확률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 전반의 합리성에도 영향을 준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가 운명을 신이나 우주에 맡기기보다는, 확률의 법칙을 이해하고 삶의 다양한 변수들을 보다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인 소회

확률과 삶의 우연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

이 책은 단순한 통계학 입문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우연’이라는 개념을 수학적으로 성찰하게 만드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핸드의 설명을 통해 나는 ‘운명’이라고 여겼던 수많은 사건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복권에 당첨되는 누군가, 길에서 우연히 만나는 인연, 반복해서 겪는 불운한 사건들까지—이 모든 것이 사실은 ‘희박하지만 필연적인’ 통계적 법칙 속에 있다는 사실은 나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었다. 이제 나는 단지 운이 좋거나 나쁘다고 판단하지 않고, “얼마나 많은 기회 중 하나였는가?”, “이 사건이 일어날 만한 충분한 조건이 있었는가?”라는 질문을 먼저 하게 되었다.

또한, 이 책은 통계학에 대한 경외심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통계를 어렵고 멀게 느끼지만, 핸드는 일상의 언어로 통계를 설명하며, 그것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밀접한지를 보여준다. 이는 과학적 사고가 결코 차가운 분석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는 따뜻한 도구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그러나 그것을 읽는 눈이 필요하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우리가 흔히 겪는 ‘우연’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정체다. 이 책은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 즉 확률을 인식하고, 편향을 경계하며, 통계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제공한다.

운명과 우연에 휘둘리기보다, 그것을 분석하고 해석할 수 있는 힘. 데이비드 핸드는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그러한 ‘인식의 힘’을 전하고 있다. 신은 정말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주사위는 언제나 확률에 따라 돌아가고 있으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것을 무작위로 여기지 않고, 그 안의 질서를 인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