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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독후감,기억과 상실, 그리고 반복되는 탐색,느낀 점

by 올라운더 LEE 2025. 4. 20.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독후감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독후감


경계 너머를 응시하는 자의 몽상

무라카미 하루키는 항상 ‘경계’에 서 있었다. 그의 작품은 현실과 비현실, 생과 사, 자아와 타자, 기억과 망각 사이의 흐릿한 경계를 유영한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바로 그러한 하루키적 세계관이 응축된 소설이며, 동시에 작가가 오랜 세월을 지나 도달한 ‘성숙한 서정’의 결정체이다. 이 소설은 1980년대 하루키가 발표했던 동명의 단편소설을 모티프로 삼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깊이는 단편이 담아내지 못한 철학과 사유로 가득 차 있다. 40여 년을 돌아 다시 써 내려간 이 이야기는 단순히 소녀를 사랑한 소년의 성장담이 아닌, 기억과 상실, 존재의 본질에 관한 묵직한 탐색이다.

불확실한 벽 속의 도시

고립된 이상향인가, 억압된 기억의 은유인가

소설의 핵심 배경은 ‘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이곳은 외부와 단절된 채, 일정한 규율과 정체된 시간 속에 존재한다. 이 도시 안에서는 모든 것이 일정하며 감정은 억제된다. 그곳에는 ‘불’이 없고, ‘새벽’도 없다. 불은 감정의 메타포이며, 새벽은 변화를 상징한다. 그러한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 도시가 감정의 억압과 시간의 정체 속에 있는 장소임을 보여준다. 즉, 이 도시는 상처받지 않기 위한 자아의 방어기제이며, 상실과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만든 심리적 공간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주인공은 그 도시 안에 남고 싶어 하지 않는다. 소녀는 도시 안에 있으나, 주인공은 도시 밖에서 그녀를 회상하며 끊임없이 도시와 그녀를 잇는 통로를 찾는다. 이는 상실된 기억, 혹은 사라진 사랑을 붙잡으려는 인간의 근원적인 열망을 반영한다. 하지만 그러한 열망은 언제나 ‘불확실한 벽’에 가로막힌다. 이 벽은 단지 도시를 둘러싼 물리적 장벽이 아닌, 인간 내면의 깊은 심연이며, 상실과 두려움, 그리고 현실을 직시할 용기 부족의 상징이다.

기억과 상실, 그리고 반복되는 탐색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근본적으로 ‘기억의 회복’에 대한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소녀를 잃고, 그녀를 다시 찾기 위해 다양한 삶의 국면을 겪는다. 소설의 전반부에서 주인공은 젊은 시절, 도시에서 나와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그 후 작가로 살아가며 도서관 일을 병행하고, 17세 소녀와의 만남, 도서관 내 ‘벽 안의 공간’으로의 침투, 그리고 그 이후의 상실과 회복의 과정을 거친다.

특히, 소녀와의 교류는 단순한 애정 관계를 넘어선다. 소녀는 마치 ‘잃어버린 것들의 대리자’처럼 묘사된다. 그녀는 세상과 감정을 단절한 채 살아가며, 언어가 불가능한 상태에서 비현실적 연결감을 주인공에게 준다. 이 설정은 다시금 ‘벽’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벽은 현실과 비현실, 기억과 망각, 말과 침묵을 가르는 장치이며, 소녀는 그 경계에 선 존재로 기능한다. 이 벽은 끊임없이 주인공을 그 너머로 이끌지만, 동시에 되돌릴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을 예고하기도 한다.

도서관과 이야기: 인간 존재를 떠받치는 구조물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공간은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하루키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상징적 공간이며, 지식과 기억, 무의식이 교차하는 장소로 설정된다. 이 소설에서도 도서관은 현실 세계의 허브이자, 벽을 넘어서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주인공은 도서관의 어두운 복도를 통해 ‘벽 너머’로 들어간다. 이는 마치 무의식 속으로의 잠행, 혹은 억압된 기억의 심연으로의 침투를 상징한다.

더불어 이야기 그 자체도 중요한 장치로 등장한다. 주인공은 작가이며, 이야기와 언어를 통해 세계를 구성하고 해석한다. 그러나 이 세계는 점차 모호해지고 불확실해지며,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영역—즉 ‘불확실한 벽 너머’—에 다다르게 된다. 하루키는 이 지점에서 ‘이야기의 한계’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야기는 인간의 내면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가? 혹은 이야기는 결국 현실을 왜곡하고 미화하는 도피의 수단일 뿐인가?

이러한 의문 속에서도 하루키는 말한다.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 한, 존재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것이 아무리 허약하고 덧없더라도, 이야기는 기억을 잇는 유일한 구조물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성숙한 하루키’의 시선

하루키는 이 작품에서 ‘죽음’을 매우 조용하고 차분하게 다룬다. 주인공의 삶은 계속해서 상실을 경험하며,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사라진다. 하지만 하루키는 이를 비극으로 치닫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받아들임’의 미학을 보여준다. 이는 초기 작품의 방황하고 저항하는 태도와는 사뭇 다르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는 인생의 무게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조용히 의미를 찾으려는 태도가 깃들어 있다.

이것은 곧 하루키의 나이와도 관련이 있다. 젊은 시절의 하루키가 ‘실재하지 않는 도시’에 집착하고, 그 벽을 넘으려 했던 반면, 지금의 하루키는 ‘넘을 수 없는 벽’ 앞에서 앉아 조용히 담담히 그것을 바라본다. 벽을 넘으려 하기보다, 그 벽이 왜 존재하는지를 묻는 태도. 그것이 이 소설의 깊이를 더하는 이유다.

느낀 점


‘벽’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 너머도, 여전히 우리 안에 있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단지 한 남자의 사랑과 상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안고 살아가는 ‘보이지 않는 벽’에 대한 이야기이며, 존재의 불완전함, 기억의 불확실함, 사랑의 허무함, 그리고 삶의 고요한 위대함에 대한 성찰이다.

하루키는 말하지 않는다. 그는 보여주고, 느끼게 하고, 질문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 소설은 ‘이해’하기보다 ‘머무는’ 작품이다. 불확실한 벽 앞에 선 독자는, 결국 자기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벽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벽 앞에서 이야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며, 하루키가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일 것이다.